아리안은 자신을 징그러운 벌레일 뿐이라고 생각한다. 인간들이 거미들을 짓밟거나 무섭다고 도망가는 모습을 보았기 때문이다. 또한 자신을 보는 다른 벌레들의 곱지 않은 시선도 아리안을 점점 움츠리게 했다. 아리안이 상처를 받듯이 우리들도 단지 겉모습 때문에 상처를 받는다면 어떨까? 참 비참하고 부당한 경험일 것이다. 악의적이든 아니든 겉모습만으로 자신이나 상대방을 평가하는 것은 옳지 않다.
무당벌레가 되는 수술을 받은 오르티도 아리안처럼 ‘못생긴 거미’ 취급을 수없이 받았을 것이다. 그런데 무당벌레가 된 오르티가 과연 행복할까? 예쁜 벌레로 주목 받아 행복하기도 하겠지만 오르티는 더 이상 거미집을 지을 수 없다. 다리가 짧아져 성큼성큼 걸을 수도 없다. 오르티를 보면 겉모습에 매달린 나머지 개성을 잃은 건 아닌가 생각해 볼 수 있다.
그러면 아리안은 수술을 받았을까? 아리안은 수술대에 올랐으나 수술을 받지는 않았다. 왜냐하면 왕거미 모습의 자신을 사랑해 주는 잭을 만났기 때문이다. 모든 벌레가 거미의 겉모습을 싫어할 거라는 아리안의 생각은 틀렸다. 잭의 눈에 아리안은 가장 아름다운 벌레였다. 잭과 함께 하며 아리안은 자신을 있는 그대로 사랑하게 되었다.
‘내 눈이 맘에 안 들어.’, ‘코가 너무 낮아.’, ‘키가 더 컸으면 좋겠어.’ 자신의 겉모습에 대해 이런저런 불만을 늘어놓기 전에 ‘나는 나를 진짜 사랑하는가?’ 하고 물어 보자. 나를 하찮게 여기다가 지나쳐 버린 나만의 개성이나 장점은 없는지 생각해 보자. 아리안이 수술대에서 내려온 것처럼 독자들도 외모만 치장하거나 바꾸려는 데 집중하지 않고 또 다른 자신을 발견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