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 방학을 맞이한 이삭은 해변가에 있다. 멀대처럼 큰 키, 갈색 곱슬머리, 날카로운 눈매. 언뜻 보면 남을 괴롭힐 것처럼 생겼지만 실은 그 누구도 눈에 담지 않는 소년이 바로 이삭이다. 섬에서 태어나 한평생을 바닷가에서 자랐으므로 이삭에게 여름의 해변가라는 건 특별한 요소가 될 수 없었다. 이삭을 향해 인사하는 이리리만 아니었더라도 아마 계속 그랬을 테다. 이리리는 이삭을 보고 대뜸 “너 죽고 싶다며?” 하고 말한다. 지난 가을에 섬으로 이사 온 이리리도 이삭의 소문쯤은 알고 있었다. 이 섬에서 이삭은 ‘죽고 싶은 애’였다. 위클래스 시간에 “사라지고 싶다”고 말했던 게 그런 식으로 소문난 것이다.
죽고 싶은 게 아니라는 이삭의 말에 이리리는 당황한다. 이리리는 이삭과 다르다. 이리리는 정말로 죽고 싶은 아이다. 그리고 이삭 같은 애라면 자신이 망설일 때 등을 밀어줄 거라 믿고 있었다. 하지만 이삭은 이리리의 생각과는 다른 아이였고, 그래서 이리리의 계획은 어그러질 수밖에 없었다. 결국 이리리는 이삭에게서 해변가 아르바이트 자리를 받아낸다. 아르바이트 자리가 왜 필요하냐는 이삭의 물음에, 이리리는 돈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돈을 모아서 웬만해서는 절대 열리지 않는, 비싸고 무거운 금고를 살 거라고.